20년 연속 기획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
[현재] 건국대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 – ‘KU Smart Tomorrow’모금캠페인 총괄
[07~10] (재)서울대발전기금 기획부장 - ‘비전2025’ 모금캠페인 추진 실무 총괄
[2010] 캠페인 모금목표액 초과 달성(약 3,550억 원)
[2008] 서울대 최초 모금 만찬 성공/ 모금통합시스템 개발 추진
[96~07] 한국외대 공채2기 입사
- 비서실, 법인 수익사업, 연구, 교무, 홍보, 행사 및 국빈/외빈 의전 업무
- 동문관리 및 모금업무(미국 법인 설립, LA동문회 감사패 수상)
2012년 3월에 만난 펀드레이저는 건국대학교 발전기금본부의 황신애 부장님입니다. 황신애 부장님은 여러 매체를 통해 국내 1호 펀드레이저라고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황신애 부장님을 만나 왜 그런 오해(^^;)를 받게 되셨는지,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펀드레이저에 대한 전망과 이해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부장님. 반갑습니다. 여전히 사무실이 활기가 있군요.
네. 역시 학교가 좋지요? 저희 학교 캠퍼스가 워낙 경관이 좋기도 하고요. 근무하는 사람들도 좋은 환경에서 기분 좋게 근무하고, 그런 것이 사무실 분위기에 영향을 준 것 아니겠어요?
오늘 부장님과는 모금에 대한 이야기를 곧바로 본론부터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먼저 대학이라는 시공간에서 모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저는 예전부터 현재 우리나라 대학, 더 구체적으로는 대학생들의 4년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대학이 취직을 위한 학습장이 되었다는 거예요. 정말 청년 시절에 배워야 할 교양이나 철학, 폭넓은 인문학은 배부른 소리가 되고요. 더 문제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도 거기에 맞춰져 있고요. 국가 교육정책의 방향도 대학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 대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도 취업률, 영어 성적, 실용 강의 같은 것을 점수로 평가해서 지원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대학들이 돈이 많으면 소신 있게 할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대학들이 정부지원을 받아야만 운영이 되는 구조다 보니까 정부와 기업의 요구사항에 따라가는 측면이 많은 것이죠. 지원을 받기 위해서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가야 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대학이 획일화 될 수 밖에 없고요. 학교의 제도나, 커리큘럼이나, 연구 같은 것도 거기에 맞춰져 가는 거에요.
그렇겠죠. 특히 지금 등록금이 재정의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대학의 재정 구조상 수요자 측면, 즉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하게 되는 측면도 있고요. 재정 구조가 건강하지 못하다 보니까 너무 수요자 측에 끌려가게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죠. 저는 이 지점에 대학 모금이 가지는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대학이 소신 있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재정이 건전해져야 하고, 다양화 되어야 하고, 튼실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모금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모금을 통해 재정 측면에서도 100년을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대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군요. 정말 대학 모금의 아주 중요한 지점을 지적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건국대의 모금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축산과가 역사가 깊으니까 그쪽이 가장 활발하죠?
여전히 좋긴 하죠. 동문층이 두텁다 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죠. 발전 기금 수치 등 여러면에서 역사가 있는 학과는 그렇지 않은 학과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어요. 보통 학생들을 배출을 해서 자리를 잡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동문들의 학교에 대한 기부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대략 20세에 대학에 들어오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야 기부할 여유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대학의 역사가 최소한 30년에서 40년 이상이 되지 않으면 어려워요. 그래서 대학들 중에서 최소한 몇십년 이상의 역사가 되는 대학과 학과들은 잘되든 못되든 모금이 되요. 만약 모금이 안된다면 시도를 안해서 못하는 거죠.
대학은 거액 기부가 많은 편이지만, 동문들에게는 대중모금, 정기기부를 많이 요청하는 편이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소액 정기 기부를 많이 요청하죠. 보통 동문들이어도 기부 요청을 드리면 성공률은 3~5% 안팎이에요. 동문 사이에 모임이 있고, 네트웍이 이어져 있고 친목모임이 잘 되있는 경우에는 그보다는 좀 높아지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반성해야 할 것이 대학들이 길게 보고 동문들에게 뭔가를 해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요청 편지나 전화를 드리면 새삼스럽게 왜 이런 요청을 하는데 하는 말씀이 당장에 나오는 거죠. 대학에서의 모금은 동문들이라는 기반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기 때문에 길게 보고 관리를 한다면 분명히 성과가 날 것이니까요. 지금 당장 뭔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 관계관리를 하면서 Keep-in- Touch 를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10년 이상이 그렇게 관계 관리가 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든 적든 후배들을 위한 기부는 반드시 생기게 되죠.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은 모금을 해야겠다고 하면 당장 몇 년 후의 성과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거잖아요. 동문에 대한 관계 관리를 그렇게 길게 보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있죠. 학교 역사가 25년 조금 넘은 포항공대는 지금 그렇게 길게 보고 하고 계시다고 하고요. 많지는 않지만 그 외 몇몇 대학이 길게 보고 하고 있어요. 여기서 문제는 그런 활동을 학교 내 모금과 관련된 담당 부서가 하느냐, 아니면 동문회가 하느냐의 차이인데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동문회와 모금 부서가 하나가 되어서 co-work을 하잖아요. 근데 한국 대학은 아직 적절하게 함께 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고요. 예를 들어 대학이 동문회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죠. 그리고 지향이 다른 부분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협업에 대한 문제의식과 풀이방법을 기부자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기부자로써 동문은 동문회에 후원금을 냈든, 학교에 기부금을 냈든 같은 것으로 보거든요. 내가 여기 냈는데 저기 또 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학교 모금이 잘되려면 대학 모금팀과 동문회가 재정적인 연결고리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부자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기부자 관리에 대한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죠.
그리고 동문회가 더 잘 되려면 대학 후원조직이라는 역할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네. 맞습니다. 동문회는 아무래도 친목 조직이라는 성격이 크죠. 내부적으로 보면 친목적 목적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외부적으로 후원조직이라는 모습과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 동문회에게도 도움이 되죠. 서울대가 모금팀을 만들면서 동문회와의 관계 설정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면서, 또 한계라고 할 것은 동문회가 친목 모임을 넘어서 모금 조직으로 발전하고 역할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기존에 갖고 있었던 동질감이나 성취 같은 만족감들을 어떻게 상쇄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죠. 결국 내부적으로 그런 논의가 있고 스스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것을 학교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좋은 해결책이 제시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정말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여쭤볼게요. 대학 모금에 있어 모금 이슈가 되는 것이 적립금 문제잖아요. 그 얘기 좀 해주세요.
음. 그건 정말 쉬운 문제는 아닌데요. 대학 모금에 있어서 적립금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에요. 대학에서 모금을 하면 빨리 써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어요. 목적에 맞게 돈을 모아서 빨리 집행을 하라는 게 지금 법의 기본적인 근간이거든요. 법을 만드신 분들의 생각은 빨리 집행을 하지 않고 모아두는 것은 뭔가 좋지 못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으로서는 적립금이라는 것이 먼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성 있는 예산 편성을 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이거든요. 미국 대학 들이 대학 재정에서 상당한 부분을 기부금으로 안정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적립금을 쌓아놓았기 때문이거든요. 매년 자신들이 모금한 것만으로 충당을 한다면 그 비율이 절대 안 나오는데 이전에 상당히 큰 기금을 만들고 길게 투자를 해서, 그것을 통해서 나오는 기부금으로 안정적인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900년 초의 록펠러 재단 등이 가장 중요하게 그 역할을 해준 것이고요. 만약 그들도 적립금으로 크게 만들지 않고 매번 써버렸다면 경기 상황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때 안정적으로 대학 재정을 충당하지 못했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적립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지난번 등록금 이슈가 있을 때 적립금을 가지고 대학 본부의 도덕성이나 이런 면을 제기한 바 있잖아요. 위법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그렇고요.
사실 대학들이 굳이 법을 어겨가면서 적립금을 쌓아놓고 모금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거든요. 문제는 이런 문제 인식이 아마 정부나 국회에 정확히 전달이 안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의 법이 계속 존재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미국에서는 모금을 통한 기금 적립을 권장하고 있다고 해요. 앞에서 얘기한 이유 때문이지요. 지난번 등록금 이슈가 있어서 30-40개 대학의 감사를 했을 때도 주요 감사 내용이 쌓아놓은 돈이 얼마가 되고, 그것을 왜 장학금 등으로 빨리 집행을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근데 그때 제가 던진 질문이 우리 대학이 하루 벌어서 하루 다 쓰면 정말 어려울 때는 문닫아도 좋냐 하는 것이었거든요. 지금 법에서는 3년안에 모금한 돈을 다 쓰라고 정해져 있는데요. 현실적으로 이게 올바른 재정 운용이냐,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하는 의문이 있는 거죠. 물론 현재 저희 모금팀에서는 법의 테두리에서 적립해야 할 것과 빨리 써야 할 것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서 상세한 자료를 준비하고, 집행하고 있는데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과 이해가 필요하죠.
그런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일반 기부자들은 학교의 일반 적립금이 과하게 많다든가 하는 것을 기부를 하지 않을 이유로 들고 있잖아요.
그것은 신뢰와 투명성에 대한 부분이죠. 기부자들을 만나서 대학의 적립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적립금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설명하면 다들 이해를 하세요. 그런데 대학들이 그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죠. 이유가 어떤 것이든요. 다행스럽게도 저희 대학 같은 경우에는 아주 클리어해요. 법인도 그렇고, 대학도 그렇고요. 그런데 일부 대학의 경우에는 그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요. 또 하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일반 적립금을 통해서 나온 수익금이나, 자산 획득이 그다지 자랑할 만한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공개하지 않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시는 거죠. 저는 대학이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해명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기부자나 구성원에 대한 예의인 거죠. 그리고 의혹이 있다고 기부자들이 느낀다면 모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또 기부자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대학이나 병원이 기부금을 받아서 건물 짓는 데만 열심이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게 대학의 사정을 몰라서 생기는 질문과 대답이에요.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의 생각 저변에는 학교가 쓸데 없이 과시하기 위해서 건물이나 시설을 늘인다 하는 생각이 있으신 거거든요. 그리고 그런 의문에 대해서 대학이 그것을 친절하게 해명하지 않아요. 그런데 실제로 학교에 교육연구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요. 학교가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면 좋은 교수님을 모시고, 좋은 연구시설을 마련하고 해야 하는데요. 그러자면 그분들을 위한 연구실이나 연구 시설을 늘여야 하잖아요. 그런 시설이 제공되지 않으면 좋은 분을 모실 수가 없고요. 결국 시설은 확장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학습 시설, 휴식 공간이나 스터디 공간도 필요해요. 좋은 학생들을 선발해서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야 하는데 공간이 부족해서 교육과 실습의 한계가 있으면 결국 교육 수준도 떨어지게 되고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는 셈이죠.
결국 대학의 공간 문제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데, 그것을 단면으로만 잘라 보면 건물 짓는 것은 학교의 욕심으로 보이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 명분과 과정을 사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것인데요. 대학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특히 예산이나 행정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그 과정의 명분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없고 결과만을 챙기게 되는 구조니까요. 그러다 보니 학교 외부에 설명을 할 때도 학생과 교수님들의 요구사항만 부각되고 과정에서의 명분이 잘 설명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사회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때는 학교에서 건물을 짓고 있는데 왜 짓고 있는지 잘 설명되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불필요하게 내 돈이 그런 곳에 쓰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는 거지요.
대학 모금에서 모금 수요가 가장 큰 것이 어느 분야인가요?
학교에서 목돈이 필요한 곳이 건물과 장학금이에요. 왜냐하면 교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교수님 수 확보와 같은 경우 정부가 직접적인 개입을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줄이거나, 제재를 가하고 있거든요. 그런 곳에 먼저 예산 집행을 하다 보면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시설이에요. 그래서 대학에 돈이 좀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건물 짓는 거에요. 그리고 장학금도 모금 수요가 크긴 한데 장학금은 학생들에게 배분이 되고 나면 끝이잖아요. 당장의 자산으로 남는 게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 장학금은 대학 평가 측면에서는 크게 어필을 못하는 측면도 있고요. 따라서 모금을 할 때는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건물을 먼저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죠. 제 생각에 모금에 있어서 장학금과 건축기금이 나란히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십, 수백억의 건축기금을 모금하면서 장학금을 모금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요. 좀 치우쳐져서 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죠.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면 이런 상황들이 단순하게 외부인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잘 안된 문제만은 아닌 거 같은데요. 결국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모금 부서를 비롯한 대학에서 그 메시지를 미처 못 만들었던 거예요.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거든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그런 요구를 하는 교수님이나 학생들이 직접 만들지는 않아요. 그분들은 요구할 뿐이죠. 그리고 일반 행정부서에서는 모금에 대한 명분에 관심도 없고 아이디어도 없어요. 실무적인 역할만 하니까요. 그리고 기존의 대학 모금 부서에서는 그런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어요. 그렇게 때문에 명분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에 소홀했던 것이죠. 누가 이런 대 사회 메시지를 만들고 홍보해야 하느냐 하는 구조적인 책임감이 학교에 정립되어 있지 않는 거죠. 많은 학교에서 모금팀이 만들어지고 모금을 해야 한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에는 절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의외로 모금 부서조차도 그렇죠. 모금을 하기 위해서 필요성만을 제시하는 것이지. 이것이 대학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설득하지 못하는 거죠.
그 역할을 모금 부서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신고요.
제가 미국 견학을 가보니까요. 미국에서는 모금팀을 중심으로 왜 건물이 필요하고, 뭘 장학기금을 만들어야 하고, 왜 박물관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를 엄청난 자료로 쫙 보여줘요. 그리고 중요한 일이 학교 내외곽의 동문, 교수 등 구성원들을 네트워킹 해서 대 사회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자원봉사 조직을 셋팅하고요. 그 다음에 수백명의 모금 전문가들이 학교의 자원을 총 동원해서 쫙 퍼트려요. 그러니까 메시지 전달 효과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대학들을 보면 메시지 정리도 잘 안되어 있고, 그걸 굳이 다른 부서에 알리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냥 어떤 한 부서의 일로만 되는 거죠. 그래서 모금팀을 만들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명분과 메시지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 대학들의 행정 부서들을 보면 조직이 아주 잘 짜여져 있어요. 역할 분담도 확실하고 매뉴얼화 되어 있죠. 정해진 역할 외에는 서로 간섭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모금이라는 분야는 역할을 넘나들 수 있고 공격적으로 치고 나갈 필요가 있는 부서거든요. 그리고 기존 부서와 비교해서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역할이 정해져 있지 않고요. 그런 면에서 모금 명분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파하는 에너지를 모으는 일은 모금 부서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봐요.
좀 다른 얘기인데요. 대학 모금의 활성화라는 것이 대학이 만들어진 근본 문제와 연관되어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벽돌 쌓듯이 한장 두장 모금을 통해서 만들어진 대학이었다면 가장 중심이 되는 부서는 모금 팀이었겠지만, 우리 나라 대학들은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전통이 있더라도 유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금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맞아요.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들은 처음부터 모금을 통해서 쌓아 올린 형태였던 경우가 많죠. 특히 산업 혁명 이후에 사회적인 변화와 맞추어서 대학이 함께 성장하고 커나간 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설립 과정이나 성장 과정이 설립자 1인 중심이거나, 사회와 함께 존중을 받는 길을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굳이 돈을 줘야 하나? 라는 생각을 주었다는 거죠. 이런 것은 제가 어쩌면 대학에서 오래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문제이고요. 특히 모금팀에 있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문제들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 모금을 코디네이션 하는 입장에서 보니까 이런 역사적인 면과 근본적인 면을 좀 더 알게 된 거예요.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대학 모금에 관여하고 계신 분들 중에 이런 것을 고민하시는 분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함께 풀고 나눌 분을 찾지 못했어요. 대학 모금을 오래 하시면서 아주 넓은 시야를 보시는 분이 없다는 점은 정말 아쉽죠.
이제 자연스럽게 모금팀과 펀드레이저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펀드레이징 시작하신 계기를 간단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본격적으로 모금 업무를 시작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전 언제나 일을 할 때 근성을 가지고 일을 했었지만, 일이 아닌 직업관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 건 서울대부터인 듯해요. 하지만 모금 관련 업무를 시작한 때는 그전에 근무했던 외대에서부터고요. 외대에서 7년을 교직원으로 있다가 서울대로 갔거든요. 물론 외대에서는 교직원으로 맡겨진 업무를 한 것이었죠. 교직원으로 모금 관련 일을 하면서도 ‘부서를 옮길까 말까, 이 일을 계속 할까 말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모금 일을 했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분들과 비교해보면 모금 관련 일을 꽤 길게 한 것이고요.
그럼 외대에서 모금 업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서울대로 옮기시지 않았을 거잖아요.
제가 사람 복이 많은 게, 1999년도에 처음 모금 부서에서 관련 업무를 시작하면서 만났던 노어과 교수님이 있어요. 미국에서 지내실 때 보험 관련 일을 하셨고, 모금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분이셨죠. 그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모금에 대해 가르쳐 주셨어요.
그 당시 제가 맡아서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해외동문들을 대상으로 총장님이 각 해외 지역에 방문해서 만찬회를 하는 해외순방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당시에 해외에 계시면서 동문들과 교류가 자연스러웠던 교수님께서 큰 역할을 해주셨죠. 학교 특성상 외대에는 해외에 진출해서 전문가로 자리잡은 동문들이 많이 있었고,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에서 모임을 하면 200여명씩 모이곤 했었거든요. 아시겠지만 미국의 모금 스타일은 일시에 거액을 기부하기 보다는 거액이든 소액이든 꾸준하게 연간으로 기부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기부를 하시는 분들이 만찬회에서 모금 약정을 하신 후에 한국으로 송금하자면 매번 번거롭기도 하고, 세제 혜택도 안 되고, 또 한국에서는 해외동문들에게 편지나 택배를 보내게 되면 비용 부담도 너무 크다 보니 현지, 특히 미국 현지에서 그 분들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했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사모님의 회사를 통해서 그 역할을 도와주시다가 나중에는 ‘HUFS-USA’라는 재단을 설립 하고, 그곳에서 후원자 약정 관리가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 당시에 교수님께서 동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공지사항을 알리는 등 회원관리를 꾸준히 하셔서 약정 하신 분들이 잊지 않고 몇 년 간 후원을 지속할 수 있게 한 역할을 해 주셨어요. 교수님께서 재단을 통해 동문들을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담당자로서 보고, 듣게 되고 그러면서 모금에 대한 경험이 하나도 없던 상태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모금에 대한 일을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신 거군요.
네. 그 이후에 미국에서의 모금활동이 성공 케이스가 돼서 남미, 중국 5개지역, 일본, 유럽, 동남아로 확장하면서 모금활동을 했어요. 저 역시 미국에서 해외 동문 모금 구조를 경험해보니, 지역별 모금, 학부모 모금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 과정을 통해 모금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더라구요. 지금이나 그때나 모금부서에서 오랫동안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동의를 하지만, 학교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거든요. 2-3년 사귀었는데 3년째에 사람이 바뀌고 그러면 관계 관리가 안 되니 모금이 안 되고 그런 과정이 계속 되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모금 부서에 있다 보니 모금부서의 허점을 더 잘 볼 수 있었고요. 모금을 더 잘하기 위해서 허점을 조금씩 보완하면서, 인맥을 쌓아가다 보니 거액모금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어요.
모금업무에 눈을 뜬 건가요? 그래도 직업으로서 펀드레이저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텐데요.
2001년도였는데, 그때 도움과나눔의 모금아카데미를 알게 되었어요. 아마 도움과나눔도 모금아카데미를 처음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현장에서 느꼈던 애로사항이나 어려움을 강의를 통해서 들으니 명쾌한 거에요. 시너지가 된 거죠. 내가 생각한 게 이런 거였어. 공감을 하고, 모금은 역시 전문적으로 해야 되는구나. 생각해서 최영우 대표님이 소개해준 원서들을 읽기도 하고, 모금부서에 사람을 한 두 명씩 늘려가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방향성과 대학에서 모금 조직의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 나름의 생각이 자리가 잡힌 거 같아요. 모금 업무를 시작한지 5년쯤 넘었을 때죠.
외대에서는 기능적으로 모금 업무에 대한 개념이 정립이 되었다면 서울대로 옮겨가게 될 때는 직업으로서의 펀드레이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2007년도에 서울대 발전기금재단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당시 서울대에서 모금을 이끌어가는 실행 매니저에 대한 필요가 있었고, 그때 조인을 하게 되었어요. 기존에 있었던 조직의 브레인들과 저의 실행 경험을 녹이면 서울대 모금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이제 펀드레이징 전문가로써 서울대 이야기를 좀 해보죠. 서울대에서 근무하시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서울대에서 모금을 하면서 느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모금에는 좋은 아이디어와 상황에 적합한 전략 수립. 그리고 실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금만 알아서는 대학모금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대학에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고, 보수적인 조직이다 보니 마음을 잘 열지 않아요. 또 포지션 변동이 잦은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물과 기름 같이 섞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모금은 교감이 되어야 설득도 하는 것이고, 서로의 리소스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 부분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대학의 다른 조직과 협조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는 말씀이시죠?
어렵죠. 중요한 것이 대부분의 경우 대학의 모금 창구 역할은 모금 부서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서울대가 모금을 성공적으로 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성공한 동문들을 기부자로 잘 이끌어낸 점인데, 거기에서 그 기부자들과 접점이 되는 부서가 모금 부서였는가는 하는 것은 의문점이었어요. 서울대에서 본격적으로 모금을 시작하면서 유력한 기부자들을 개입시키기 위한 접점이 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힘이 많이 들었고, 그 창구가 될 수 있었던 학과, 교수님, 그 사람들의 지도교수, 친한 벗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중복적으로 포진 되어서 모금 부서가 파악할 수 없는 구조였고요. 결국 모금부서가 모금을 잘 하려면 학교 전체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그런 통합이 가능한 구조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대학 모금에서는 모금만 잘 안다고 해서 성공한 펀드레이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통합적인 사고와 이해가 가능한 사람과 그것이 가능한 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 거죠.
앞에서 말씀하신 모금 실행에서 모금 부서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좀더 해주시죠.
잠재기부자들과 접점을 만들고, 관계가 형성이 되고, 기부를 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생기게 되는 것은 대학내의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리고 실제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일 때, 모금부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고요. 모금부서는 어느 정도 모금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전문적으로 디자인해서 실제로 성사가 되게끔 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곳인 것이죠. 근데 또 어려운 것은 이런 수많은 접점과 창구들에 계심에도, 정작 본인이 창구가 되는 것을 모르시고, 또 알고 있다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모르세요. 그래서 모금부서에서 모금을 잘 하려면 결국은 접점이 되시는 이런 분들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에요. 접점이 되시는 분들이 불특정 다수이지만 기부자와 마찬가지로 이분들도 매우 중요한 고객이신 거죠. 잠재기부자들은 접점이 되시는 분들과 더 친밀하니까 내부의 관계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외부 관계를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서울대에서 이런 부분이 꽤 힘드셨다고 하셨는데요. 건대에 오셔서는 이런 것들이 나아졌나요?
그래서 건대에 와서는 먼저 내부의 고객들과 프렌들리하자, 그리고 그분들에게 모금 마인드를 확산시키자 하고 생각했어요. 서울대에서는 여럿이 co-work을 해야 하는 것이 구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려웠어요. 서울대의 가장 큰 장점에 대한 반작용이죠. 건대에 와서는 허물없는 가족 같은 학교의 고유 분위기 덕분에 모금을 할 수 있는 구조적인 측면들이 상당히 개선되었고요. 모금은 모금 부서 구성원보다는 현장에 계시는 분들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걸 많이 강조하고 그 활동에 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항상 이야기 하고 있고요. 그렇게 현장에서 기부자와의 접점이 되어서 요청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보람이 되고 실제로 수혜를 받으실 수 있도록 제도로 보완했고요. 예를 들어 교수님들 같은 경우는 후원자를 연결해주시면 그 학과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기금이나, 학생들을 지원할 수 배분을 포함하도록 하고요. 그래서 후원금이 들어오면 대대적인 공개를 많이 해요. 그리고 학과와 많이 매칭을 시켜요. 학과에 장학금이 없었던 교수님들 입장에서 외부에서 큰 금액이 들어오게 되면 충격을 받으시고, 모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세요. 또 모금 유치 실적도 평가 부분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고요. 저희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드리는 것도 많거든요. 그런 것에서도 혜택을 받으시니까 은근히 좋아하시죠.
건대로 옮기면서도 직장을 선택한다기 보다는 직업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서 옮기신 건가요?
야무진 꿈인데요. 서울대에서 사실 힘이 들었어요. 서울대가 공격적인 모금을 하기도 했고, 큰 변화를 집중적으로 많이 만들다보니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고요. 서울대를 그만두고 다시 뭔가 하고자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시점에서도 그래도 다른 일이 아닌 모금이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건대에 지원을 하면서 내가 건대에 모금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요. 기여 못하면 큰일이잖아요. 서울대에서 모금을 했을 때 서울대 성공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서울대니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원래 잘 되는 곳 아냐’ 이렇게 생각을 하시니까요. 하지만 건대는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모금을 하기에 열악한 구조였고요. 그런 측면에서 펀드레이저로 내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옮긴거죠.
건대에서는 배경보다는 본인의 역량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 이런 얘긴가요?
물론이죠. 직업인 입장에서는 배경보다는 자신의 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니까요. 또 하나 건대가 모금에 성공을 하게 되면 다른 많은 대학들에게도 고무적인 일이고, 모금에 대한 입장을 달리 취하는 곳이 많아지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전문가를 뽑는 것을 통해서 모금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서울대에서는 확실히 확인시켜주지 않았지만, 만약 건대에서 모금에 큰 변화가 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면 다른 대학들도 모금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말씀이 너무 반가운데요. 대학뿐 아니라 일반 비영리 단체에서도 펀드레이저가 열심히 해서 모금 성과가 나와도 그 반응들이 ‘대표가 유명한 사람이어서 된 거다’ 이런 식의 반응들이 많잖아요. 펀드레이저가 직업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려면 이런 노력에 대한 평가들이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얘기했던 것처럼 서울대니까, 단체의 대표가 유명하니까, 이렇게 평가된 부분들이 많다는 거죠. 부장님께서 건대에서 성공한다면 많은 펀드레이저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학들의 모금 성공 케이스를 보면 모금 조직을 통한 모금의 성공이었냐 리더 한 사람의 역량에 의한 성공 이었냐 이렇게 두 가지로 갈라져요. 모금 조직이 없어도 총장님 한 분만 잘 움직여도 모금이 잘 되요. 예전 송자 총장님이나 어윤대 총장님 같은 경우죠. 하지만 그런 총장님이 없으면 모금은 어려운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이 필요하죠. 서울대에서와 건대에서 그것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싶어요. 예전에는 대학에서는 리더십만 잘 하면 모금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이 대다수였다면 지금은 모금의 성패가 모금 조직이 잘 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모금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것이 이미 하나의 큰 산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면 이제 모금조직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느냐에 대해 대학들이 고민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고요.
현재 건대에서 펀드레이저로 만족감을 느끼시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건대로 오니 모금에서의 성취감도 더 있어요. 주변의 반향이나 임팩트는 서울대와 비교할 수 없지만, 모금에서 변화가 있구나 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것은 건대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아주 구체적인 질문 인데요. 이쪽은 계약직으로 오신 거죠? 본인이 원한 건가요 아니면 학교에서 그렇게 뽑은 건가요?
둘 다인데요. 처음에 학교에서도 저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저도 매년 성과를 보여주고 더 높은 연봉으로 계약하는 계약직을 원했고요. 그래서 서로 합의가 되어서 계약직으로 오게 되었죠. 사실은 저는 계속 만류하고 있는데 학교 입장으로는 전문가가 오래 일해주었으면 하는 생각과 저에 대한 배려(보상) 차원으로 채용조건 전환을 권하는 얘기가 계속 나와요. 개인적으로는 전문직으로 있으면서 계속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싶고, 다른 기관에 대해서도 오픈 되어서 건국대학교가 지속가능하게 모금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나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항상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 리더십 입장에서는 검증된 전문가라면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당연하죠.
저희 회사 직원 중에도 최근에 학교에 펀드레이저로 이직하시는 분이 있는데요. 그 분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학교에서 전문가를 뽑을 때는 지금도 전문가이고, 3년, 5년, 10년 후에도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를 바라고 뽑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께서 3년, 5년 지나면 학교의 분위기나 조직의 관습에 익숙해져서 그저 일반 행정 직원이 되시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는 다시 새로운 전문가를 뽑게 되고요. 이런 것이 반복되는 거죠. 일의 수준은 깊어지지 않고, 그냥 학교 생활 잘하는 직원이 늘어나는 … 끊임 없이 자신을 단련해서 10년 후에도 전문가로서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싶어요.
네. 감사합니다.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여쭤보죠. 경험상 보시면, 펀드레이저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사회 경력이 있어야겠다고 보시나요?
제가 볼 때는 경력이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전혀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말씀 중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거든요. 모금이 그런 분야인 거 같아요.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과 경험이 물론 없는 것보다는 좋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모금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아요. 모금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있고, 열정이 있어요. 모금에 대한 확실한 투자와 몰입이 있는 사람이 결국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모금, 펀드레이징이라는 시장이 너무 무궁무진해요. 바닷가에 가보면 조개들이 입 벌리고 막 열려 있는 게 보이잖아요. 그걸 그냥 담기만 하면 되는데 줍는 사람이 없어요. 이걸 같이 하면 재미도 있고,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같이 하는 사람이 많이 않으니 빨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이미 다 얘기 해 주셨지만 직업적 전망으로 봤을 때, 이게 도전해 볼만 하고 본인에게 있어서도 오랜 시간 할 만한 일이다 보시는 거죠?
네. 도전하고 몰입하는 만큼 성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의 경우에 확신을 가지느냐 아니냐에 대한 결심이 제일 먼저 걸리는 거 같아요. 지금은 대학들이 모금 분야에 대해서 조망하고 있다고 할까요 지켜보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또 모금이라는 분야가 사람을 뽑는 등의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대학에서 사람을 늘린다는 게 부담이 큰 부분이라 어디까지 이것을 열어놓을 것인가 살펴보면서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 펀드레이저를 뽑는 조건이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직업적인 소명이 중요한 펀드레이저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죠. 계약기간 동안 열심히 하다가 다른 데 가서 또 잘하면 되고 그러면서 본인의 스펙을 쌓고 경험을 늘려가면 되니까요.
특별히 대학 모금 분야에 지원하려는 분들께 이것만은 알고 와라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대부분 대학모금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모금보다는 대학이라는 직장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안정적인 직장으로서의 대학을 보시는 거죠. 그렇게 보면 계약직이라는 것이 불안해요. 일단 조건 자체가 불안하고, 조직에 들어와서도 문화적인 갭이 생기고요. 대학에서는 형평성에 대해 민감한 집단이어서 모금가에 대한 특별한 처우 이런 거를 대학에서 먼저 해주겠다는 곳이 거의 없어요. 성과를 보면서 진전시켜가자는 것이고 저 역시 그렇게 해왔거든요. 말씀드릴 것은 일에 대한 확신이 중요해요. 저는 무조건 되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하면 모금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고, 모금이 되면 당연히 대학에서도 붙잡고 싶어서 더 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음껏 밀어붙일 수 있었어요.
제가 안타까운 것은 모금 관련 분야에 계신 분들이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면 휠씬 더 좋은 성과와 처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확신을 못 가지고 뜸을 들이는 거에요. ‘이렇게 애썼는데 재계약이 안되면 나만 헛고생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드니까 1년 지나면 다른 곳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시는 거잖아요. 당연히 그렇게 되면 일에 몰입을 할 수가 없죠. 철저하게 본인한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직업에 대해서 전망을 가지고 몰입을 하면 (제가 보기에) 99%, 100%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본인들이 거기에 대한 진지함을 가지고 충분히 몰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디게 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무척 높은 분야니까요. 모금 전문가로써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초년차들이 혼자서 그것을 감수하기는 힘든 거 같아요. 저희 부서 같은 경우는 저처럼 확신이 있는 누군가가 지치지 않게 옆에서 계속 갈아 엎어주고 밀어주고 하죠.
모금팀이 갖추어야 할 팀웍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보죠. 모금은 기본적으로 팀웍이기 때문에 팀으로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인데요.
저희가 팀웍이 굉장히 좋아요. 비결은 지식 공유와 협력, 분담인 것 같아요. 모금을 실적 기준으로 개인적 평가를 하게 되면 같은 부서에서 모금하기 힘들어 지거든요. 그리고 개인 평가를 하게 되면 공유가 안되기 시작해요. 자기 실적을 생각하다 보면 업무 공유가 안되고 co-work이 깨지고 경쟁구도가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업무의 효과도 반감되죠. 저희는 철처히 팀베이스로 움직여요. 다 쪼개는거죠. 공도 쪼개고, 책임도 쪼개고요. 그리고 우리가 잘 하면 모두가 함께 가니 옆 사람을 신뢰하고 같이 성과를 올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사람이 능력의 차이가 있잖아요. 잘하는 분야도 다르고 장점도 다르고요. 그걸 똑같이 객관화 해서 한 기준으로만 평가하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각자의 장점에 적합한 포지션에 맞게 배치해야 하죠. 어떤 사람은 데스크워크는 전혀 못하는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있고요, 어떤 사람은 그런 건 못하는데 성격도 안 좋은데 기가 막히게 수치를 잘 다루는 사람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앞에 거 다 못하는데 이벤트 잘 하는 사람이 있고요. 적재적소 사람을 가져다 쓰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죠. 한가지 일을 하더라도 한 가지 기능으로만 끝나진 않거든요. 행사를 하나 하더라도 누군가 준비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서포트를 해야 하죠. 저희 팀 같은 경우는 각각의 프로젝트별로 주도권을 거의 공평하게 나눠요. 책임과 주도권은 한 사람이 하지만 모든 사람이 팀으로 움직여요. 어떤 사람도 어떤 사업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 구조에요.
이 구조를 갖게 된 배경에는 저희 허탁 부총장님의 개인적인 노력과 헌신이 숨어있어요.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소외되거나 낙심되지 않도록 충분히 격려해 주시고 자극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담당자들이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거든요.
외부에서 보기에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 같이 움직이나 이렇게 생각하고, 일 하나로만 보고 그렇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게 장기적으로 보게 되면 그런 것들을 여러 개 같이 하니까 사실은 똑같은 건데 말이죠.
그리고 경험적인 공유도 커지는 거 같아요. 자기 프로젝트 아니면 경험하지 못할 것들인데 내건 아니지만 옆 사람을 보면서 여러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이죠. 물론 평가가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평가 방법이 달라야 하는 거죠.
저희 회사에 모금아카데미를 보면 주로 모금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많다 보니, 교육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신이 안 나고,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더 이상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고,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는 것이 스타트업 교육은 유지를 하더라도, 본인이 직업인으로 펀드레이저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수준 높은 교육들을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맞아요. 저는 매니저 교육이 필요할 거 같아요. 펀드레이저뿐만 아니라 펀드레이저 디렉터라든가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도 꼭 필요해요. 저는 대학을 그나마 알았으니까 대학의 빈틈도 알고,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틈새도 알고, 또 법인이나 기획이나 온갖 잡다한 부서에 있어봐서, 어떻게 해야 학교의 의사결정이 쉽게 나겠다라는 구조를 알고 있고, 누구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조정을 해가면서 그나마 트랙을 만들고 있는 건데, 대학을 모르고 들어간 분들이 모금활성화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거든요. 일반 기업에서 경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학에 오면 설득하거나 도와줄 상대를 찾기가 참 힘들어요. 너무 복잡한 구조라서 내가 누구와 협상을 해야 그 건을 성사가 될지 말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거에요. 모금을 잘 할 수 있으려면 대학은 대학에 맞게, 병원은 병원에 맞게 그런 것들을 조율할 수 있는 기능적인 교육, 즉 조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요. 모금하러 (대학에) 모이는 대부분의 초임 펀드레이저들은 과업을 제대로 설정해 주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잖아요. 또한 대부분 자기가 모금 하는 건 하겠는데 남들한테 어떻게 하도록 가르쳐 주는 건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곤란해 해요. 그렇기 때문에 선임자로서는 유능하게 성실하고 좋은 직원을 만나면 땡잡은 거고, 본인도 같이 올라가는 거고요. 반대로 영 아닌 사람이 오면 죽 쑤는 거죠. 모금은 훈련을 시켜서 같이 가야 하는 거에요. 아무리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훈련을 받으면 변화가 생기니까요.
그런데 내부에서 하자면 상당한 제약이 있잖아요. 거의 불가능하죠. 누가 디렉터를 교육해요. 그런 분들에게 전문 교육이 필요하겠죠. 저희가 오랫동안 펀드레이저에 대한 직업적 지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말로만 그랬지 체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움직임이 없었던 거죠.
저도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민이 아주 많아요. 내가 이럴 텐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참 아쉬운 게 저도 항상 실수를 해보고 나서야 깨닫고, 어려워 보고 나서야 배우게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미리 교육을 시켜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고, 적절한 파트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제는 혼자 고민하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요.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고민하고 빨리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 하니까 혼자서 막 정리를 하긴 하는데, 정말 아쉬운 게 그래도 한 번 더 누군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짚어보고 나가면 정말 좋겠다 싶은데 그런 파트너가 없어요.
이런 것들을 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중에 부장님께서 그런 역할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열심히 하시다가 나중에 대학 모금가를 위한 그루, 맨토 역할을 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제 꿈이긴 한데, 제가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남들이 보기에도 그런 얘기해도 나빠 보이지 않다 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을 때, 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재단의 윤정숙 상임이사님처럼요. 큰 포부를 가져볼게요. 제가 뭔가를 해서 존재감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것이 존재감이 되는 사람이 되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대학 모금 관계자분들 같이 스터디 모임이 있죠? 이름이?
저희가 붙인 이름이 ‘대학모금스터디라고’ 첫 자를 따서 ‘대모스’라고 해요. 저는 이게 demonstration 같아요. 저희가 시범 케이스인거죠. 평균 8~10명 정도 모여요. 많이 모이지는 않아요. 저희가 인원을 제한하려고 한 건 아니라 관심사가 다르더라고요. 직업적으로 모금을 해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아직은 현장에 많지 않아요. 그런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모금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어려워서 최소한 한 부서에 오래 있으면서 모금에 대한 긴 플랜을 가지고 계신 분이면 좋겠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고, 2-3년 있다가 네트워킹 쌓고 다른 부서를 가실 분들은 좀 적합하지 않다는 기준으로 좋은 파트너십을 찾다보니 그정도 모이시는 것 같아요.
찾았는데 6-7분이면 저변이 넓지 않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저희가 아주 오픈 해서 찾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색깔이 다른 분들도 있었고, 좋은 분들인 건 알지만 관계가 검증되지 않아서 참여하지 않으신 분들께서도 계시고요. 이런 분들은 모임이 진행되는 경과를 봐서 적절한 시기에 추가하자는 의견이 있어요. 그리고 아직 이 모임의 존재감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있는 걸 알면 많이들 참여하시고자 할거에요.
네. 이 인터뷰를 읽으시고 참여하시려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 속 깊은 얘기까지 모두 털어 놓는 시원한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인터뷰 진행 : 방성진 책임 컨설턴트, 김현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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