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연속 기획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녹색연합 한상민 협동사무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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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1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에서 만날 펀드레이저는 녹색연합 한상민 협동사무처장님입니다. 녹색연합을 따로 설명드릴 필요는 없을 거 같고요. 음......사무실 얘기는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참 좋은데요?
네. 좋죠.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원래는 이게 다세대 주택이었어요. 내부를 다 개조해서 3층짜리 사무실로 만들었지요. 추운 겨울에 전직원이 달라붙어서 뜯고 만들고, 칠하고. 에고...... 처음 입주할 때 많이 힘들었죠. 다들 좋아하는 거 같긴 한데, 지금은 직원이 늘기도 했고, 짐도 늘고 해서 좁은 게 문제예요.
그래도 녹색연합다운 사무실이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원 텃밭에 뭐 심어 먹기도 하고 그러나요?
네. 전담하는 사람이 있어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죠. 도시락 먹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그런데 녹색연합다운 이라는 그런 말들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제 환경재단에서 코칭 리더십 교육이 있었는데요. 서로 인사하는 시간에 저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녹색연합답지 않다는 얘기를 하세요. 사실 어디 가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죠. 양복 입고, 깔끔한 얼굴에, 그래서 그런 거겠지요? 또 제가 강남 남자거든요. ㅎㅎ.
그러니까 활동가 안에서도 운동단체의 고정관념이 있는 거죠. 녹색연합다운 사무실이라는 것은 칭찬도 되겠지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니까 한번 정도 고민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진보는 맨날 가난한 사람만 하나? 터프 한 스타일이 진보 스타일인가 하는 거 말이죠. 물론 녹색연합 활동을 하면서 좀 털털하고 야생의, 현장 활동가의 모습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요.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펀드레이징 현장에 나서고 이런 측면에서는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죠.
오늘은 궁금한 걸 곧바로 물어보죠. 녹색연합은 거액 기부자로 불릴 분은 없죠?
없죠. 가장 많이 내신 분이 개인으로는 100만원~200만원 정도고요. 평생 회원으로 300만원내신분이 몇 분 계시는 정도니까요. 유산 기부처럼 거액을 약속하신 분도 없으시고요. 다른 단체들은 어떨까요? 사회운동 단체 중에 몇 천만원, 1억 이상 거액 기부를 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개인은 그렇다고 해도 기업 기부는 거액이 있잖아요. 순수한 기부금부터 사업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도 있고요. 이럴 경우에 기부금을 받는 기준, 다시 말해 모금 윤리 기준 같은 것이 필요할 텐데요. 어떤가요?
저희가 7가지 원칙과 그에 따른 부가 규칙이 있어요. 그리고 결정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하게 되어 있고요. 예를 들어서 군수사업, 노동탄압이 있는 기업, 환경 분쟁이 있는 기업 등은 안 된다는 것 등이죠. 그런데 이게 좀 확대되면 우리 단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민사회 단체와의 분쟁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까지 가게 되고, 그러면 좀 복잡하죠. 그래서 기업의 후원 의사가 있을 경우에는 관련이 될 지역사회나 해당 단체에게 꼭 질의를 해요. "괜찮겠느냐, 어쩌면 좋겠느냐" 하는 의사를 묻게 되죠. 예전 사례 중에는 후원을 받았다가 되돌려준 경우도 있어요. 후원을 받을 때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중에 다른 단체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경우죠. 이럴 경우 후원을 해준 해당 부서나 기업과 녹색연합이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되돌려주게 되는 경우가 되겠죠. 그 때 그 기업과도 오랜 시간 기업 후원이 있었던 회사인데 그 후에 5-6년 동안 후원이 끊겼어요.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는 경우가 참 힘들죠.
그러나 모금 윤리라는 원칙과 운동 단체로써의 활동 윤리를 기준으로 어려운 결정이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모금에 있어 이런 모금 윤리 규정을 미리 만들고 원칙을 세워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녹색연합은 회원, 대중 모금이 워낙 잘 되고 있는 단체입니다만, 중고액 모금을 통해서 새로운 기부자를 확보하고 저변을 확대할 필요도 있을 거 같은데요.
지금은 저희가 시범사업 형태로 해서 몇 가지 기부 아이템을 만들었어요. 그중 하나가 DMZ아카이브라는 사업인데요. DMZ 환경 생태에 대한 자료 축적 사업을 계획하고 이것을 실행하는 거죠. 아카이브라는 것이 자본 집약적이에요. 돈이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이 사업은 모금이 꼭 필요한 사업이고, 소액을 넘어서 중고액 기부를 받아서 성공하겠다는 개념이죠. 아름다운재단의 중고액 성공사례인 류무종아카이브와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 사업은 녹색연합이 꼭 해야 할 사업이라고 보는 거니까요. 2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하고 3억 이상의 모금을 해보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이번 후원의 밤에서 공개하고 내년부터 시작하겠다고 선언을 했죠.
후원의 밤 이야기도 해보죠. 녹색연합도 후원의 밤 행사를 마쳤죠? 녹색연합에게 후원의 밤은 어떤 의미예요?
네. 첫번째는 말 그대로 후원을 위한 기부금 모금 행사고요. 그리고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있다고 할까요? 평소에 친하기는 한데, 그래서 한번 만나고 싶은데 마땅히 기회를 잡지 못할 경우 후원의 밤 행사에 모여서 서로 안부도 묻고 하는 만남의 자리이자. 한해 마감과 새로운 계획을 선언하는 PR의 자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후원의 밤에서 모금 되는 금액이 저희 같은 경우 1억 정도 되니까요. 단체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되죠. 그러면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 단체들끼리 상부상조하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요. 작은 단체들은 그것이 꼭 필요하니까요.
날짜 잡는 것도 어렵겠는데요? 단체들끼리 겹치면 안되잖아요.
중요한 문제죠. 날짜가 성격이 비슷한 다른 단체랑 겹쳐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리고 올해 같은 경우에는 10월26일에 서울시장 선거라는 큰 변수가 생겼잖아요. 이건 큰 난리가 난 거죠. 만찬 같은 것은 날짜를 늦어도 7-8월에 셋팅을 하거든요. 저희는 5-6월에 했고요. 그때 날짜 다 잡아놨는데 서울 시장 선거로 모든 관심이 거기에 가 있는데 후원의 밤이 잘 되겠어요? 이런 변수들까지 있으니까 준비할 때 골치가 아프죠. 이제 12월에 행사하는 단체들은 FTA 때문에 고민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후원의 밤 행사는 년간 계획을 잡아서 일찌감치 준비하는 게 꼭 필요해요. 미리 준비하면 변수에 대비하는 것도 여유로워지니까요.
얘기를 돌려보죠. 지역 녹색 연합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예요? 제가 살고 있는 인천만 해도 인천 녹색 연합이 굉장히 활동을 열심히 하시던데요.
네트워크 관계라고 보면 되요. 독립운영, 독립채산, 별도의 대표가 별도의 활동을 하는 거예요. 단지 운동의 성격이나 정체성 관련된 것만을 전국단위에서 컨트롤 하는 거고요. 협의체 구조로 운영을 하고요. 녹색연합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지역 조직을 포괄하는 의사 결정을 하게 되지요. 만약 녹색 연합의 철학과 다른 활동을 한다거나, 현안에 대하여 다른 입장을 가진다거나 또는 활동가의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면 제명을 하거나 경고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역 녹색연합은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녹색연합과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계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활동이 더 활발하고 활동적이죠. 전문성도 높고요. 역사도 오래되었고요. 그리고 지역 녹색연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활동하시면서 녹색연합과 네트워크로 함께 하시는 경우가 더 많고요, 그게 더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어요.
이번 정부 들어서서 4대강사업을 비롯해서 정권과 각이 서는 사업을 많이 했잖아요. 모 단체 같은 경우에는 그 덕분에 기부금 모금이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 녹색 연합은 어떤가요?
일단 저희는 회원 구조가 워낙에 탄탄하고요. 회원들의 충성도도 높기로 유명하니까요.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은 거의 영향이 없었어요. 그러나 기업 후원금이 반토막 난 것이나, 기업-단체 협력 사업이 많이 줄어든 영향은 있죠. 그 덕분에 전체 수입 중에서 회비와 대중모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높아졌어요. 2005년에는 수입구조가 많이 다양했어요. 그래서 회비, 후원금 비율이 50%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2010년에는 회비 비중이 80% 가까이가 되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다른 연구 사업이나, 사회 공헌 사업 등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는 건데요. 아무래도 연구사업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오는 것이 많으니 말이죠. 이걸 좋은 구조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 물론 회비, 후원금 비율이 높다는 것을 다른 단체에서는 다들 부러워하고, 저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회원구조가 탄탄하고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일수록 회원 관리 부서가 빛이 안 나지요.
그렇죠. 그냥 잘 굴러가고 있다고 보이니까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저희 녹색연합의 조직 리더들이 조직국 출신들이 많으세요. 전, 현 사무처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이해를 하려고 하죠. 물론 단체의 성격상 현장 활동 부서가 가장 최우선적으로 중심이 되어야지만, 내부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회원을 관리하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어야 한다는 거죠. 저희 단체에서도 예전에는 현장 활동가들이 회원 관리 부서에 오면서 '쉬러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회원 중심으로 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다 보니까 이제는 많이들 이해하고 인정하는 편이예요.
맞아요. 저도 많은 단체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런 얘기 하거든요. 내가 이 단체에 활동가로 온건데 왜 회원 관리나 모금부서에서 활동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런 생각이 많다 보니 항상 신입이 회원관리를 맡게 되고 그것도 2-3년 정도만 하고 현장으로 간다는 생각이 많죠. 당연히 전문가가 만들어지지 않는 거고요.
요즘에는 많이 바꿔 가고 있어요. 저희도 현장과 조직 부서간에 로테이션을 하면서 이해를 많이 시키려고 하고 있고요. 그리고 사업측면에서도 예전에는 현장에서 생긴 컨텐츠를 지원 하는 개념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시민참여국이나 모금쪽에서 사업 기획을 잡고, 활동가들을 이끌고 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DMZ아카이브 사업 같은 경우에도 정다영이라는 탁월한 펀드레이저가 모금 중심으로 사업을 다시 셋팅하고, 활동 부서쪽에 자극을 준 경우라고 볼 수 있죠. 이번에 몇 개의 사업을 공모형식으로 모금 사업으로 선정했는데, 선정이 안된 사업 같은 경우에는 활동 부서에서 반발을 하기도 하고요. 그게 당연하다고 보지만요. 그러면서 모금부서가 활동을 뒤쫓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안하고 기획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되는 거죠. 한 순간에 된 게 아니고 몇 년 걸린 거예요. 몇 년 전만 생각해보더라도 해피빈에 모금 한다고 컨텐츠를 수집하는데 활동가들한테 쫓아다니면서 달라고 조르고 아주 애를 먹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어렵게 해피빈에 올렸던 쪽에서 몇 백만원씩 후원금이 나오는 거에요. 그러니까 활동부서에서 '와. 이게 괜찮구나!' 하는 인식이 생겼죠. 당장 출장비, 활동비,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했는데 모금부서에서 그 물적 기반을 만들어주니까요.
그렇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린 거죠?
오래 걸렸죠. 지금 4-5년 넘게 걸린 거죠. 다른 단체들도 그랬을 거에요. 어떤 단체는 4-5년 전 우리 같을 거고요. 중요한 건 버티고 꾸준히 하면 되요. 특히 모금은요. 성과를 보여줄 때까지 버티면 반드시 인정을 받습니다. 녹색연합 해피빈 같은 경우에요. 처음 시작할 때 분기에 2만몇천원 들어왔었어요. 다들 이게 뭐야.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 2백 가까이 꾸준히 들어오죠. G마켓 100원 나눔 같은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대중 모금도 그렇고요. 꾸준히 버티고 하면 성과가 생기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꾸준히 버티고 전문가가 될 때 까지 하지 않는다는 거죠.
모금 얘기 많이 했는데요. 이제 처장님 얘기도 해볼까요? 저희 인터뷰가 1천명의 펀드레이저 이야기잖아요. 저희가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인터뷰거든요. 처장님 녹색연합에 들어온 이야기를 해보죠. 그보다 먼저 처장님은 본인도 말씀한 것처럼 강남 남자 스타일이신데요. 집이 강남이에요?
네. 제가 강남이 집이에요. 스타일도 강남 스타일이잖아요. 전 학교 졸업하고 한참 벤처 붐 있을 때 IT관련 일을 했었어요. 처음에 녹색연합 들어왔을 때부터 활동가들 사이에서 딱 그 느낌으로 보시더라고요. 다들 강북사람들인데, 혼자만 강남 사람 같은 그런 분위기였죠. 하하. 녹색연합에는 자원봉사 활동을 98년도부터 하다가 99년에 본부 공채를 보고 들어왔어요. 그렇게 녹색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왜 녹색연합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는데요. 제가 환경공학과를 다녔는데, 전국단위 환경 조직을 만들어보자 해서 '전국 환경 관련학과 학생회 모임'을 만들었죠. 예전에 연합 조직 만드는 게 많았으니까요. 그러면서 지원 요청을 드리려고 녹색연합이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후에 PC통신 '나우누리' 환경포럼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또 녹색연합에서 만든 동호회였어요. 그 활동을 하면서 녹색연합이랑 더 잘 알게 된 거죠. 그때 나우누리를 담당하던 녹색연합 담당자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 사수더라고요. 그 후에 PC통신 환경포럼 활동을 같이 하던 후배가 녹색연합 연구소에 사람 뽑는데 가보지 않겠냐 해서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죠.
처음 시작은 연구소였고, 그 후에 본부로 오신거군요.
본부에 왔을 때는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운동 단체이다 보니까 운동의 대의에 대해서 뭘 알겠느냐는 무시 같은 게 있었죠. 그때 배치된 부서가 기획홍보국었는데 캠프 운영이나 재정 사업을 맡고 있는 부서였죠. 그러다가 기획 사업팀을 맡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재정 사업과 관련된 부서였고요. 그런데 그 때는 이런 업무들이 운동이냐 하는 분위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건 아니었고요. 그래서 힘들어했죠.
그런데 많이 힘들어하던 와중에 2005년도에 사무처장님께서 조직국장을 맡기시더라고요. 조직국장이 내부에서는 선임 부서장 자리거든요. 당시에는 최연소, 최소연차 국장이었어요. 파격적인 인사였는데요. 그래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했던 거 같아요. 그 때 임명자도 당신이 힘들어 하니까 이겨보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아마.
그리고 2007년까지 조직국장을 2년 하면서 빚을 다 갚았어요. 흑자로 전환을 한 거죠. 많이 기뻤어요. 조직국장 하면서 조직을 운영하고 재정을 운영하는 것을 많이 배웠고요. 특히 2010년에 ㈜도움과나눔을 만나면서 모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이 조직내부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저도 1년 안식년을 갖고 돌아온 후에 모금팀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요.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어떤 때었어요?
정말 가까운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재정적이든. 사업적이든 말이죠. 특히 재정 관련해서 그럴 때죠. 그리고 나를 운동가로 보기보다 돈 관리하는 사람으로 봐줄 때 참 많이 힘들죠. 우리 운동에 그런 면이 있잖아요. 돈 얘기 하면 천해 보이는. 그렇게 봐줄 때 힘들죠. 지금 우리 운동 단체들 중에 자신이 펀드레이저다라고 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제 생각에는 유명한 단체들,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그룹에서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존경하는 펀드레이저 얘기로 넘어가면, 어떤 사람이에요?
박원순 변호사요. 운동에서 시작해서 펀드레이저로 간 사람이잖아요. 새로운 영역을 두려움 없이 개척해 나가는 게 저의 롤모델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분이 성공을 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 큰 용기가 되겠죠. 그리고 펀드레이저로 가장 어려운 것이 요청 첫 마디를 꺼내는 것인데 아름다운재단에서 내세웠던 "나누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이 없다" 라는 말이 오랫동안 도움을 주었어요. 고민을 많이 깨주신 분이 박원순 변호사죠. 지금은 시장이지만 시장 마치고 나면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박원순 변호사 같은 사람 얼마나 멋져요. 자신을 모금가라고 얘기하는 사람 말이에요. 운동으로 설명해도 최고의 운동가인데 어디 가서 자신을 말할 때 모금가로 소개하잖아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처장님은 어떤 펀드레이저이고 싶으신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전 "마법을 쓰는 펀드레이저" 이고 싶습니다. 현실은 어렵지만, 현실을 넘어서는 마법같은 능력을 갖고 싶다는 희망이겠죠? ㅎㅎ
오늘 많은 말씀 나누었는데요. 단체 안에서 펀드레이저로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큰 도움이 되었을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인터뷰 진행 : 방성진 책임 컨설턴트, 김현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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